공동육아 어린이집에서 아빠는 어떻게 참여할까?
공동육아 어린이집에서 아빠 참여는 선택이 아닌 구조입니다. 운영위원회, 당번, 현장 참여를 통해 달라지는 아빠와 아이의 관계를 실제 경험으로 풀어봅니다.
지난주 수요일, 내 차례가 왔다.
월요일은 임 아빠,
화요일은 김 아빠,
그리고 수요일은 나.
운영위원회 회의 날이다.
처음엔 낯설었던 ‘아빠 참여’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면서
내가 운영에 참여하게 될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그게 뭐 하는 건데?”
몇 달이 지나고 나서야 알게 됐다.
이건 선택이 아니라
공동육아가 작동하는 방식이라는 걸.
마당에서 이미 시작된 참여

회의실로 들어가기 전,
마당을 지나갔다.
아이들은 흙으로 무언가를 만들고 있었고,
몇몇 아빠들은 울타리를 고치고 있었다.
- 누군가는 나무를 재단하고
- 누군가는 페인트를 칠하고
- 누군가는 아이들을 살피고 있었다
그들은 회의실에 들어오지 않았다.
이미 해야 할 일이 있었기 때문이다.

“아빠도 참여해야 한다”는 말의 오해
요즘 자주 듣는 말이 있다.
“아빠도 육아에 참여해야 한다”
그런데 현실에서는 종종 이렇게 작동한다.
- “오늘은 아빠가 좀 봐줄래?”
- “이번 주말은 당신이 아이랑 시간 보내줄 수 있어?”
이건 참여라기보다
도움에 가깝다.
그리고 도움은
선택할 수 있다.
공동육아에서 참여는 ‘선택’이 아니다

여기서는 다르다.
운영위원회도, 당번도
선택이 아니다.
이미 일정으로 존재한다.
처음에는 솔직히 불편했다.
- 내 일정이 아니었고
- 준비도 필요했고
- 익숙하지도 않았다
나는 회의를 좋아하는 사람도 아니다.
구조가 관계를 바꾼다
그런데 이 구조 안에서
분명한 변화가 생겼다.
어린이집이 더 이상
“아이를 맡기는 곳”이 아니게 됐다.
“함께 만드는 공간”이 됐다.
아이가 바라보는 아빠의 변화

마당에서 울타리를 고치던 날,
아이가 옆에서 보고 있었다.
다음 날 아이가 물었다.
“아빠, 여기에서 뭐 했어?”
“울타리 고쳤어.”
아이은 그 울타리를
손으로 만져봤다.
아빠가 만든 것,
아빠가 있었던 자리.
그게 아이에게 남는다.
시간의 문제가 아니라 구조의 문제
나는 여전히 바쁘다.
아이와 보내는 시간은
엄마보다 적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 구조 안에서는 다르다.
- 참여를 미룰 수 없고
- 양보할 수 없고
- 미안해할 필요도 없다
이미 정해져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시간에
나는 아이 곁에 있다.
혼자가 아니라 함께 하는 육아

또 하나 중요한 건
혼자가 아니라는 점이다.
마당에서 울타리를 고칠 때,
- 다른 아빠들과 함께 고민하고
- 각자의 경험을 나누고
- 부족한 부분을 채운다
육아가
개인의 책임이 아니라 공동의 책임이 되는 순간이다.
완벽하지 않아도 되는 참여
여기서는
완벽할 필요가 없다.
- 능숙하지 않아도 되고
- 준비가 부족해도 되고
- 서툴러도 괜찮다
그냥 그 자리에 있으면 된다.
아빠가 ‘아빠가 되는’ 과정
가정의 달이 다가온다.
하지만 이 시간을
“아빠를 위한 달”이라기보다
“아빠가 되어가는 시간”이라고 말하고 싶다.
여기 있는 아빠들은
완성된 사람이 아니다.
나처럼,
지금도 배우는 중이다.
아이에게는 당연한 풍경

회의를 마치고 나오자
아이가 달려왔다.
“아빠! 오늘 뭐 했어?”
“어린이집 사람들이랑 얘기했어.”
아이는 그 말을
아주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다.
아빠가 이곳에 있는 것이
당연한 것처럼.
선택이 아닌 구조가 만드는 변화

이 방식이
모든 어린이집에 적용될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한 가지는 분명하다.
선택이 아닌 구조는 사람을 움직인다.
바빠도, 서툴러도,
그 자리에 서게 만든다.
지금, 그 자리에 서 있는 것
나는 아직 충분한 아빠가 아니다.
더 많은 시간도 필요하고,
더 배워야 할 것도 많다.
하지만 매주 수요일,
그 마당에 서 있다.
그리고 지금은
그것으로 충분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