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비초등자녀를 둔 엄마가 읽은『어린이는 멀리 간다』

일곱살 아이를 놀리기만 하는 엄마가 읽은 김지은 작가의 '어린이는 멀리 간다.' 우리 아이도 멀리 갈 수 있을까? 도대체 아이는 어디로 멀리 보내야 하는 걸까!!

예비초등자녀를 둔 엄마가 읽은『어린이는 멀리 간다』

공동육아 5년차.. 아이는 일곱살. 내년이면 학교에 가는데... 내 아들은 아직 글을 모른다. 제이름 석자만 획 수를 무시하고 자유자재로 그릴 수 있는 수준이다. 불안한 마음에 며칠 앉혀놓고 아야어여오요우유으이를 가르쳤더니 글씨 배우는 게 무서워서 학교에 못가겠다는 아이.. 나는 놀려고 태어났다고, 나는 인권이 있다고 외치며 도망가는 아이를 보면서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지?' 걱정이 밀려왔다. 매일같이 산으로 놀이터로 터전 앞마당으로 쉴새없이 노는 게 가장 중요해서 선택한 공동육아. 지금까지의 공동육아는 만족스러웠지만 내년에 학교에 가서도 아.. 공동육아 하길 잘했어. 라고 나를 칭찬할 수 있을까? 갑자기 불안함이 밀려왔다. 공부를 해야 하는 학령기가 되었을 때 "엄마가 놀라고 했잖아!" 아이가 이 소리를 하며 나에게서 멀리 도망치면 나는 뭐라고 대답해야 할까.

갑자기 마음이 급해져서 기적의 한글학습법을 사보기도 했다. 나는 마음이 급했지만 아이는 크게 관심은 없었다.. ㅋ

이제껏 한 번도 육아서를 펼쳐보지 않았지만 이제는 공신력있는(?) 전문가의 의견에 기대고 싶었다. 김지은 작가님의 신간 '어린이는 멀리 간다'에서 그 답을 찾을 수 있을 거 같았다. 공동육아의 모토도 스스로 생각해서 길을 찾아내는 아이를 기르는 것일 테니까. 내가 어떤 환경에서 아이를 키우고 있었는지 점검할 수 있다면 지금의 이 불안감이 해소될 수 있지 않을까?

  1. 충분히 의견을 내고, 그 의견을 인정받을 수 있는 환경인가?

책에 따르면 막상 어른은 "제 생각은요.." 어린이가 능동적으로 나오면 당황한다고 한다. 결국 "어른 말씀에 끼어드는 것이 아니다"라고 꾸중을 들으며 자란 우리 세대는 해결 과정에 적극적으로 아이가 참여하면 겉치레로만 아이의 의견을 존중하는 척 하면서, 어른의 의견으로 해결을 한다는 것이다.

"그래 말해봐. 너는 어떻게 생각하니?"라고 아이에게 따뜻하게 묻는 순간에도 어른들 사이에는 이미 결론이 내려져 있는 경우가 많다. 뜻이 수용되지 않을 거라는 걸 알아챈 어린이는 떼쓰기로 대응하기 시작하고 어른들은 아이가 자신들의 중요한 논의를 방해한다고 느낀다. "너는 네 생각만 하는 구나"같은 말을 건넨다. 조금 전 까지도 스스로 의견을 가져 보려고 노력했던 어린이는 비난 앞에 위축된다. 시무룩한 채로 돌아서면서 자신의 생각을 갖는 것과 어른들의 말을 잘 듣는 것 사이에서 고민한다. (14p)
아이의 의견을 독립적으로 인정받고, 그 의견을 표현해서 현실로 바꾸어 보는 경험은 소중하다(15p)

이번에 평일아마(휴가를 가신 선생님 대신 하루 종일 아이를 돌보는 부모님 활동)을 해보니 선생님들이 아이들에게 수없이 하시는 질문이 있었다. 그래서 **의 마음은 어떤 거 같아? 아이는 대답을 한 후, 자신의 마음대로 놀거나, 혼자 있거나, 다른 친구와 활동을 하거나. 자신의 선택으로 다음 목적지를 정한다. 자신의 선택을 선생님에게 다른 쪽으로 권유 받는 경우는 극히 드물었다. 아니 없었다. 선생님들은 아이에 대한 결론을 가지고 있지 않으셨다. 아이들은 자신이 선택하는 대로 행동하는 경험이 매일매일 쌓이고 있겠지?

특히나 아이가 다니는 어린이집에서는 하루에 뭘 하고 놀면 좋을지 '아침 열기'시간이 있다. 저마다 날씨/친구들의 컨디션/어제 했던 놀이와의 연계성 등등 따져 놀러 가고 싶은 장소를 정하는데, 이 과정에서 아이들은 자신이 왜 그 장소를 원하는지 이유를 찾게 되고, 자신의 의견이 왜 채택되지 않았는 지에 대해서도 생각해볼 수 있는 것 같다.

  1. 마중 나오는 어른들이 주변에 있는가?

책에 따르면 동요 '바둑이 방울'은 학교에서 돌아온 어린이가 자신을 마중 나온 강아지를 만나 느낀 반가움을 담은 노래다. 하지만 작가는 2절 가사에 주목하고 있다. 2절 가사는 집에 돌아오는 주체는 어린이가 아니라 강아지다.

딸랑 딸랑 딸랑 딸랑 딸랑 딸랑/ 바둑이 방울 잘도 울린다 / 대문 삐꺽 열어 주면은 /제가 먼저 달음쳐 들어온다/ 딸랑 딸랑 딸랑 딸랑 딸랑 딸랑/ 바둑이 방울 잘도 울린다. (2절 가사 중)

노래의 1절에서 아이가 강아지로부터 환대받는 경험과 2절의 아이가 강아지를 환대하는 경험을 연결되어 있다는 것이다.

이 노랫말처럼 어린이는 누군가로부터 이해받은 경험을 통해 타인을 이해하는 방법을 배운다. 동화는 수많은 몰이해를 뚫고 만들어 내는, 약자를 마중 나오는 세계에 대한 활자화된 증거들의 모음이다. "책에서 만난 사람들이 어땠는지 알아? 나를 반겨 주었어. 나를 응원했다니까!"라고 느끼는 경험은 자라는 어린이를 조금 더 마음 놓고 자라나게 한다. 자신도 어서 자라 누군가를 응원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게 만든다. (107p)

이 어린이집에 와서 가장 먼저 들었던 부모의 수칙(?)중에 내 아이만 보고 달려가지 않는다. 라는 게 있었다. 내 아이만 반길 것이 아니라. 남의 아이도 내 아이와 같이 살피라는 맥락일 것이다. 아이는 5년 동안 수많은 어른에게 인사 받고, 응원 받고, 격려 받았다. 아팠다가 오랜만에 등원하는 등원길에서, 이빨이 빠진 날 아침 만난 친구 부모님에게서, 엄마가 같이 놀러 가지 않은 친구네 집 저녁 식탁에서. 아이는 수많은 어른들을 보고 배웠다. 마흔이 넘은 나도 나에게 영향을 끼친 어른을 손에 꼽아 보라고 하면 열손가락을을 꼽기가 힘들다. 하지만 아이는 5년 동안 어린이집에서 100명이 넘는 부모님과 선생님에게 환대 받으며 사람과 관계 맺는 법에 대한 기초지식을 많이 습득하지 않았을까?

아이도 마음속으로 자신이 좋아하는 어른들 손에 꼽고 있지 않을까. 아이가 꼽은 소중한 어른이 10명이 넘을지도 모르겠다. 한글도 모르고, 선행학습도 못했지만 그래도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면 내년의 학교 생활도 잘 해나갈 수 있지 않을까?

  1. 감자처럼 클 수 있는 환경인가?

내가 좋아하는 소설 "마침내, 안녕(유월 지음)"책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나온다.

"감자가 적절한 온기와 바람, 수분만 있으면 아무런 조작을 하지 않아도 싹을 틔우듯이 적절한 환경만 만들어진다면 자연스럽게 한 존재가 자기다움을 드러내게 된다고 했어요"

이 말은 유명한 심리학자 칼 로저스의 말이다.

이 어린이집에는 인지교육이 없다. 일곱 살이 되어도 한글이나 영어교육에 노출시키지 않는다는 말이다. 놀이가 가장 중요한 교육이니 만큼 이 시기의 아이들을 인지/경쟁 교육에 최소한으로 노출시키려는 어른들의 노력 덕분이다. 놀기만 하면 되는 시간과 안전한 자연환경, 따듯하고 지속적인 어른들의 환대로. 각자의 자기다움을 드러내고 있는 아이들을 나는 매일 만나는 것 같다. 우리 감자들... 쑥쑥 크고 있다.!!

책의 저자는 성미산마을의 돌봄교실 도토리 마을방과후 아이들을 직접 볼 기회가 있었다고 한다.

도토리마을 방과후에 다니면서 얻은 것을 묻자 "친구들과 재미있는 놀이를 많이 했다."라고 대답했다. 나는 이 영화를 보면서 지난 몇 년 간 보기 어려웠던 최고로 기분 좋은 아이들 얼굴을 만나 시름없이 웃었다. (188p)

내가 바라는 아이의 최종단계는 무엇일까?

자기가 누구인지 알고, 자기 자신으로 살아갈 수 있는 수단을 스스로 찾아내는 것이다.

쉽게 말하면 지가 뭘 잘하는지 알고, 그걸 실패와 성공을 반복하면서 습득해, 평생 사랑할 수 있는 일을 찾아, 그 일로 제 앞가림을 하고 살아갈 수 있게 하는 것이겠지. 아이는 지금 이 곳에서 충분히 "멀리 갈 준비"를 하고 있는 게 아닐까. 그렇게 이 책을 읽으면서 위안을 받았다.

글씨를 모르지만 책을 읽는데 지장이 없다 ㅋㅋ

학교에서도 네 속도와 생각 그대로 탐험하길.
그렇게 마음을 다잡으며 아이의 일곱살을 지켜봐줘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