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육아 어린이집 교사 후기
성미산어린이집 교사 별사탕의 10년의 이야기
공동육아 선생님은 어떤 마음으로 아이들을 키우는지 궁금하신가요? 성미산어린집에서 10년을 함께 생활했던 우리 터전의 자랑 선생님 별사탕의 이야기입니다.
제가 성미산에서 지낸지 10년이 되었어요. 별사탕의 10년 들어보실래요?
2012 나무방
청노루(담임)와 함께 나무방 비담임.
보육교사 실습으로 시작된 인연으로 나무방 아이들과 만나게 되었어요. 아마 활동을 와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아이들이 뿜어내는 에너지는 말할 것도 없고 집에 가서 잠자리에 누워도 아이들이 "별사탕~"하고 부르는 소리가 계속 들릴 정도였어요. 실습때부터 나무방 아이들이 달사탕의 별칭도 정해주고 함께 나들이를 갈 때도 있었어요.
2013 한톨도톨방
단미(담임)와 함께 한톨도톨방 첫 담임
하루는 체조 시간에 윤슬이를 안고 걸어가다가 누군가의 다리에 걸려 엎어진 적이 있었는데 아픈 건 둘째 치고 윤슬이는 놓치지 않았다는 뿌듯함으로 위로를 삼고 있을 때 알사탕(교사)이 "자기는 괜찮아?"하는 순간 눈물이 핑! 윤슬이는 놀라서 울고 저는 동료 교사를 챙겨주는 교사회의 따뜻한 마음에 울컥해서 도톨방에서 윤슬이를 끌어안고 눈물을 삼켰던 기억이 나네요. 이후에 윤슬이는 제주도로 이사를 가면서 헤어지게 되었는데 하루라도 빨리 정들었던 마음을 정리하려고 윤슬이 바구니장에서 사진을 떼었다가 방 아이들이 "윤슬이 사진은 왜 없어?"라고 하는 얘길 듣고 제가 아이들이 윤슬이를 기억하고 추억 하는 마음의 시간을 주지 않았다는 것을 깨닫고 다시는 그러지 말아야지 하고 배웠던 기억이 있어요.
2014년 한톨도톨방
무지개(담임)과 함께한 한톨도톨 두번째 담임
지금도 가끔 무지개를 만나면 하는 말이 있어요. "난 그때 무지개 믿고 지냈어요. 무지개가 있어서 그 해를 잘 지낼 수 있었어요!" 일 년 동안 아이들도 교사들도 적응만 했던 해였던 것 같아요. 그래서 나중에 2014년 한톨/도톨방을 졸업 시킬 때의 뿌듯함과 기쁨이 컸어요.
2015 나무방
티나와 함께 나무방 첫 담임.
전망회의를 하는데 나무방 희망자가 없었어요. 누군가 나무방을 맡겠다고 해야 풀릴 것 같아서 지니(영양교사)에게 "제가 나무방을 해도 괜찮을까요?"라고 물어보니 지니가 "안될게 뭐가 있어요? 별사탕은 잘할 거예요!" 지금 생각해보니 지니한테 낚인듯.. 절대 나무방을 할 짬밥은 안되지만 그냥 깡으로 나무방을 맡게 됩니다. 첫 방모임에서 "경력도 얼마 안되고 내세울 건 없지만 진정성 있는 나무방 담임이 되겠습니다!"라고 말도 안되는 포부를 밝혔던 기억이.. 왜 그랬을까?
어쩌면 가장 많은 시행착오를 겪었던 해였던 거 같아요. 전공이 전공인지라 아이들과 동극을 하고 싶다는 의지가 강해서 현장학교에서 배웠던 <토끼와 당밀>동극을 개원잔치 때 올렸는데 최종 리허설 연습을 하다가 전도 모르게 그만 "얘들아 우리 너무 못했어!"라는 말을 뱉고야 말았어요 @.@ 참고로 이 말은 전에도 이후에도 해본 적이 없는 말이었고 저 스스로에게 하는 말이었던 것 같아요.
나무방 첫 담임을 맡고 득음에 가까운 뱃속에서부터 나오는 발성이 나오기 시작하면서 별사탕에게 이런 목소리가 있는지 몰랐다는 팬더의 말을 듣기도 했지만 여러모로 교사로 급성장할 수 있는 발판이 되었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무엇보다 교사는 아이들의 사랑을 받고도 자라지만 아마들의 사랑을 받고도 자란다는 것을 배웠어요. 부족한 것이 많았던 저를 믿어주시고 격려해 주셨던 아마분들이 있어서 지금의 저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2016 한톨도톨방
무지개(담임)와 한톨도톨방 세번째 담임
이제야 말이지만 사직하겠다는 무지개를 "나랑 도톨이들 일 년만 더 하고가~"하고 함께 귀요미들을 맡게 되었어요. 이 때의 감정을 생각하면 공허함이 컸던 것 같아요. 첫 나무방을 보내고 나니 마음이 횡-하더라구요. 횡했던 마음을 귀요미들이 차곡차곡 채워주기 시작했어요. 그리고 첫 나무방을 맡으면서 미뤘던 안식월을 이 해에 다녀오게 됩니다. 성미산에서 별사탕 첫째 껌딱지가 세화였다면 이 때 두번째 껌딱지가 유진이었어요^^ 이 귀요미들은 2019년에 다시 만나게 됩니다
2017 나무방
두번째 나무방 담임
2014년에 만났던 아이들을 다시 만나게 되었어요. 정말 많이 성장했더라구요. 처음으로 <팥죽할멈과 호랑이>공연을 해보내기 잔치 때 하게 되었는데 자신의 역할에 몰입해서 눈빛이 반짝반짝 빛났던 아이들 모습이 지금도 생각이 많이 나요! 개똥이네 책놀이터에서 종이판화 전시도 하고 아이들과 하고 싶은 것도 많고 함께 한 것도 많았던 해였어요. 무엇보다 세살 네살때부터 키웠던 아이들이 졸업을 하는 감회가 남다르더라구요.

2018 나무방
세번째 나무방 담임
2017년 달팽이가 오시면서 연달아 3년을 나무방을 맡게 돼요. 터전에 변화가 많은 시기였고 저에게는 교사회 안정이 최우선이었던 시기였기 때문에 다시 그 시기로 간다고 해도 같은 선택을 했을 것 같아요.
기억에 나는 순간은 터전에 부모 지도점검이 왔는데 나들이를 안 갈수가 없는 날이어서 한 여름에 아이들과 나들이를 갔어요. 헌데 그때 소이가 다리에 기브스를 해서 소이를 업고 삼단공원까지 왕복을 했어요. 이게 기억이 남는 건 아니고 다음날 둥둥이 날적이를 써왔는데 소이가 말하기를 "별사탕에게 신비? 신기?한 냄새가 났다."고.. ㅋㅋㅋ 소이에겐 땀냄새가 신비하게 느껴졌구나~
2019 나무방
네번째 나무방.
처음이 있으면 마지막이 있는 법! 성미산에서의 마지막 나무방! 2019년 말에 코로나가 발생하며 그 영향을 받기 시작했어요. 그것도 바로 졸업을 앞두고 벌어진 일이라 처음있는 일이었도 어떻게 해야할지 몰라서 고민을 하다가 졸업주간을 보냈어요. 나름으로는 아이들을 섭섭하게 보내지 않으려고 노력했다고 생각했는데 제가 생각 못한 부분이 성미산 어린이집이 조합형어린이집이라는 것! 아이 중심의 교사였던 저라 아마도 졸업한다는 생각을 미쳐 못했더라구요. 결국 못할뻔했던 눈물의 졸업식이 있었고 그렇게 헤어지게 되어 지금도 그 때 생각을 하면 좀 아린 마음이 있네요. 두번째 안식월도 있었던 해!

2020 한톨도톨방
펭귄(담임)과 한톨도톨방 네번째 담임
코로나는 생각보다 강했고 처음 겪어보는 상황의 연속이었어요. 신입아동 적응기간이 무척이나 길었고 여름이 되어서야 완전체가 된 느낌이었어요. 3년을 나무방 아이들과 지내다가 꼬꼬마들을 만나니 느무느무 귀엽더라구요. 무지개와의 호흡도 좋았지만 펭귄과의 호흡도 좋아서 아주아주 평온한 나날이었던 것 같아요.
2021 열매방
토끼와 열매방 첫 담임
열매방 담임은 처음이었어요. 첫 열매방이라는 애틋함과는 다르게 그렇지 못한 현실에 미안함만 가득한 방으로 기억되는 것 같아요. 2021년에는 공동육아 서부지역 전체 대표와 여름교사 대회 준비팀 팀장을 맡게 되면서 오후 시간에 자리를 비우게 되는 일이 많았어요. **이를 시작으로 퇴소하는 친구들이 하나 둘 생기면서 생기는 헛헛한 마음도 커졌네요. 세번째 안식월도 있었어요!
2022 도담방
토끼와 도담방 첫담임
터전에 한번도 없었던 도담방! 세 살 단독방! 귀여운 아이들이 넷이나 있어요. 보육교사를 시작할 때 부터 들었던 말 "아이가 스스로 생각할 수 있도록 해주세요!" 머리로는 알지만 실천하기 쉽지 않은 이 문장! 도담방 아이들과 함께 지내면서 이제 조금씩 알아갑니다. 하온이가 재훈이가 정우가 소영이가 스스로 세상의 이치를 깨닫는 순간의 기쁨을 느꼈으면 하는 '스승의 마음'을 이제는 아주 조금 알 것 같아요^^
성미산 어린이집의 다른 교사분들이 궁금하신가요?
11월 15일 2차 등원설명회에 오셔서 이야기를 들어보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