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 나들에 영어·수학 교구는 없어요: 공동육아에서 다시 배우는 ‘배움’

성미산 공동육아 어린이집의 봄 나들 이야기. 영어·수학 교구 없이도 아이들은 흙과 숲, 놀이 속에서 스스로 배우고 성장하고 있었습니다.

봄 나들에 영어·수학 교구는 없어요: 공동육아에서 다시 배우는 ‘배움’

여름방학에는 영어 문제집,
겨울방학에는 수학 연산 교재.

장난감조차도 교육적이어야 한다고 믿었다.

한글을 빨리 읽는 것, 숫자를 먼저 아는 것,
그런 것들이 아이 성장의 중요한 기준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런데 성미산 공동육아 어린이집에 다니기 시작하면서
그 기준이 조금씩 흔들리기 시작했다.

아이들은 늘 손으로 무언가를 만지고 있었다

선생님들이 보내주는 사진 속 아이들은 늘 무언가를 손으로 만지고 있었다.

흙을 파고, 나뭇가지를 줍고,
작은 구멍 앞에 쪼그려 앉아 오래 집중하고 있었다.

처음에는 솔직히 조금 불안했다.

“이게 정말 교육일까?”

체계적인 수업도 없고,
교구를 활용한 학습도 보이지 않았다.

특히 소풍 사진을 볼 때면 마음 한구석이 더 흔들렸다.

‘숲 체험’이라고는 하지만,
혹시 자연관찰 설명이라도 해주실까?
곤충 이름이나 식물 이름은 배우고 오는 걸까?

물론 직접 묻지는 않았다.

이미 이곳이
정답을 가르치는 방식의 교육이 아니라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마음속 불안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나는 왜 아이를 믿지 못했을까

돌아보면 그 불안 속에는
은근한 우월감도 있었던 것 같다.

우리 집 교육 방식이 더 체계적이라는 안도감.
‘그래도 뭔가는 더 시켜야 하지 않을까’ 하는 마음.

그런데 지난 봄 소풍 사진을 보다가
그 생각이 조금 무너졌다.

우리 아이는 큰 나뭇가지를 들고 흙 위에 무언가를 그리고 있었다.

흙을 파고, 풀을 섞고,
친구가 가져온 물을 붓고 있었다.

아이들은 그걸 ‘흙사탕’이라고 불렀다.

누군가는 돌을 주워 무언가를 만들고,
또 다른 아이는 그걸 보며 깔깔 웃고 있었다.

그 장면을 보며 문득 생각했다.

“이걸 정말 그냥 놀이라고만 부를 수 있을까?”

교구 없이도 아이들은 배우고 있었다

나는 그동안
‘수학 교구로 도형 배우기’와
‘흙을 만지며 부피를 느끼기’를 완전히 다른 것으로 생각했다.

영어 단어장을 넘기는 시간과
나뭇가지로 흙 위에 글자를 써보는 시간이
어떻게 다른지도 명확히 알지 못했다.

하지만 아이들은 이미 배우고 있었다.

몸으로, 손으로, 눈으로,
그리고 친구들과 함께 놀면서.

선생님은 그것을 단순한 소풍이 아니라
‘숲 경험’이라고 불렀다.

그 말을 듣고 조금 이해가 됐다.

나는 ‘소풍’이라는 단어 안에서
결과와 성과를 기대하고 있었던 것이다.

무언가를 보고 와야 하고,
배워 와야 하고,
설명할 수 있는 결과물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곳에는 그런 체크리스트가 없었다.

대신 아이들의 표정이 있었다.

돌아와서 할 말이 있는 아이

집에 돌아온 아이는 말했다.

“엄마, 우리 흙사탕 만들었는데 너무 맛있어 보였어. 그래서 안 먹었어.”

이 한 문장이 많은 걸 설명해주는 것 같았다.

그날 아이는 단순히 놀다 온 게 아니었다.

자기 손으로 만들고,
친구와 웃고,
무언가를 상상하고,
그 경험을 자기 언어로 다시 꺼내고 있었다.

그건 문제집에서는 쉽게 볼 수 없는 종류의 배움이었다.

운동회에도 교구는 없다

5월이 되면서 봄 운동회 준비가 한창이다.

그런데 올해도 역시 영어·수학 교구는 없다.

아이들은 뛰고, 굴리고, 던지고, 걷는다.

누군가 “이번 활동은 평형감각 발달을 위한 프로그램입니다”라고 설명하지 않는다.

그냥 아이들이 자기 몸으로 움직이고,
선생님은 그 모습을 지켜본다.

부모들도 함께 본다.

그리고 그 안에서 아이들은 자연스럽게 성장한다.

부족한 게 아니라 충분한 것이었다

나는 이제 조금 알 것 같다.

이곳의 교육은 부족한 게 아니라
애초에 방향이 달랐다는 걸.

아니, 어쩌면 이미 충분했던 걸지도 모른다.

아이들은 매일 마당에서, 숲에서, 비를 맞고 흙을 만지며
자기만의 방식으로 세상을 배우고 있었다.

정해진 커리큘럼 대신
살아 있는 경험 속에서.

영어 단어장보다 중요한 것

물론 지금도 가끔 흔들린다.

다른 아이가 학원을 다닌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괜히 마음이 움직일 때도 있다.

하지만 내 아이가 집에 와서
오늘 본 것, 만든 것, 느낀 것을 오래 이야기할 때면
나는 조용히 안심하게 된다.

요즘 내 기준은 조금 단순해졌다.

아이의 얼굴에 어떤 표정이 있었는지.
그리고 돌아와서 스스로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는지.

혹시 나처럼 이런 고민을 해본 적 있으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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